JAL 123의 비극, 정비 오류의 대가
1985년 8월 12일 오후 2시.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보잉 747 점보제트기가 있었다. 일본항공 123편(JAL 123)이다. 탑승객 524명 중 520명이 사망했다. 현대 민항기 사상 최악의 사고였고, 원인은 정비 오류였다.
활주로 위에서 항공기를 점검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라이버로 뭔가를 확인하거나, 껍질을 두드려보거나, 기록을 남긴다. 그 작은 확인 하나하나가 우리의 안전을 지킨다. JAL 123은 그 정비가 얼마나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이륙 후 12분, 제어 불능
마쓰다니 기장을 포함한 3명의 승무원이 조종실에 있었다. 비행 후 12분, 오사카 상공 약 7,300미터. 조종실에서 폭발음이 났다. 경고등들이 켜졌다. 유압시스템이 이상했다.
항공기의 조종은 유압으로 이루어진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액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항공기는 즉시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기장의 교신: "모든 유압이 떨어졌습니다. 압력이 0입니다."
관제탑도, 어떤 것도 도울 수 없었다. 기장은 엔진 추력만으로 비행기를 조종해보려 했다. 엔진의 회전 속도를 다르게 조정해 진로를 제어하는 극한의 기술이었다.
비행 후 32분. 군마 현의 오야마 산맥에 시속 약 900킬로미터로 충돌했다. 524명 중 520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는 4명뿐이었다.

7년 전의 수리 오류
조사팀은 잔해를 수집했다. 원인은 후미 동체의 손상이었다. 이 부분은 항공기가 수평을 유지하고 방향을 조종하도록 한다.
1978년 8월, JAL 123편이 일본의 한 공항에서 다른 항공기와 접촉했다. 후미 동체가 손상되었고, 정비팀이 금속 판으로 덧대는 방식으로 수리했다. 하지만 점용접의 위치와 강도가 규격보다 낮았다.
7년이 흘렀다. 매일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며 반복적인 응력에 노출된 항공기. 금속 피로가 진행되었다. 용접 부위가 서서히 갈라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용접부가 점진적으로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후미 동체의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다. 비행 중 강한 응력이 가해졌을 때, 순식간에 분리되었다. 후미 동체가 떨어져 나가면 항공기는 제어 불능이 된다. 그것이 JAL 123이 겪은 일이었다. 유압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손상되었고, 마쓰다니 기장은 32분 동안 엔진 추력만으로 항공기를 붙들었다.
만약 그 시간 항공기가 도시 위에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정비의 맹점
당시 일본항공은 국제 표준에 따라 월간·분기별·연간 정기 점검을 했다. 모두 정해진 대로였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는 비용이 많이 들었고, 수동으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손상만 찾는 식의 점검이 표준이었다.
항공 안전 위원회의 한 전문가는 나중에 말했다. "정비 기술자는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소리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금속 내부의 미세한 균열은 그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 세계 항공 표준의 변화
JAL 123 사고 이후 항공업계는 크게 변했다.
먼저 정기 점검에 초음파 검사와 X선 검사가 포함되었다. 특히 과거 손상 이력이 있는 부위는 강화된 점검 대상이 됐다.
다음으로 결함 보고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작은 손상도 정식으로 기록되고 추적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항공사들은 컴퓨터 기반 정비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모든 정비 기록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부품의 점검 주기와 교체 기한을 자동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이 교훈은 전 세계 항공 산업에 파급되었다.
정비 하나하나의 무게
JAL 123 사고는 1985년이다. 거의 40년이 흘렀다. 한 번의 정비 오류가 520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것이 강화된 정비 표준으로 바뀌면서 이후 수십억 명의 승객이 안전하게 하늘을 날았다.
활주로에서 보이는 정비 기술자들의 작은 점검, 그 기록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킨다. 비행기는 정비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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